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게임 세계관을 (안)만든다.
최근 게임 시나리오 작가(이하 작가)가 되고 싶어하시는 분들의 지원서를을 검토하곤 합니다.
예상하시는 것처럼 지원동기로 가장 자주 볼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가 있었고,
또 그 만큼이나 자주 보았던 것은, “자기가 상상했던 세계가 구현되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 역시 실제로 시나리오 실무를 진행하기 전까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세계관과 주인공(유저)의 기본적인 목적성은 마케팅적 시장분석과 타겟팅,
타이틀의 포지셔닝 전략에 따라 작가 이전에 결정됩니다.
작가는 더 멋진 사건을 구성하고 인물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마케팅적 목적성을 훼손하는 방향이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실제 작업을 하다보면, 이 둘은 아주아주 쉽게 충돌을 일으키곤 합니다.
가령 메인플롯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캐릭터를 매출을 위해 일시적으로 부각시켜야 하거나,
초기단계에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인물을 끼워넣거나, 혹은 이 정반대 상황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변화를 어떻게 하면 큰 문제없이 녹여낼까 고민하기도 하고,
나중에 그런 부분을 볼 때마다 상처자국 같아서 마음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이는 월급을 받으며 크리에이티브 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시나리오의 주요 흐름과 목적성을 설정하는 일이 사실 상 작가의 모든 것이라고 보면,
이런 마케팅적 이슈에 보다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작가입니다.
물론 시나리오의 디테일한 대부분은 시나리오 작가가 자신의 뜻대로 쓰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80% 자유롭고 20% 제한받는다는 것은 크리에이티브에 있어서는 결국 제한 받는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가장 핵심이 되는 주요 설정이나 목적성에 대한 제한이라면 이는 더더욱 명백합니다.
그럼 작가는 대체 무슨 재미로 시나리오를 쓸까요? 아니, 어떤 에너지로 계속 시나리오를 써나갈 수 있을까요?
약간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저는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 특유의 사변적인 스타일과
작가주의적 경향으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말을 떠올립니다.
“작품성이나 철학도 결국은 엔터테이먼트의 일부일 뿐이다.”
일단 그의 실제 작품 스타일과는 무척 거리가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 말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나리오 작가라면 이 문제는 절대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며,
단순히 생계나 관성, 막연한 즐거움만으로 계속해나가기 어려운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구체적이고 강한 목적의식, 자신만의 이유를 스스로 설정해 나가야합니다.
그럼 제가 시나리오 작가의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절단신공은 작가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
by Micheal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