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가치
하얀섬, BTB나 점파가 출시되고 나서 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분유료화라는 뜨거운 화두 입니다.
제가 이런 뜨거운 화두를 끌어내기에 적합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개발사의 입장에서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번 쯤 끌어내는 것은 우리나라 게임 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벅스의 카라멜 마끼아토 1잔의 가격은 5100원 선 입니다.
하지만 수 많은 분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십니다. 그렇게 비싸다고 언론에서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수많은 분들이 늘 스타벅스를 찾고, 5100원을 거침없이 지불하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하게 커피 1잔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0분 내외 입니다.
게임 개발을 이와 비교한다면 게임 1타이틀을 개발하는데에는 몇년의 시간과 수 많은 사람들의 연구개발의 노력이 들어갑니다. (물론 커피 메뉴 자체를 연구하는 비용이 들겠지만, 게임은 타이틀 이외에 미들웨어, 게임엔진 등과 같은 또다른 연구 비용이 들어가므로 그다지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왜, 게임 컨텐츠 1개의 가격이 커피 1잔의 가격보다도 못한 4000원 선에 발매되면서도 구매저항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요?
게임 1 타이틀이 4000원의 가격에 발매되는 것은 엄밀히 그 타이틀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가치를 모두 충족시키는 가격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 게임을 즐겨주시는 대부분의 유저들도 공감하시는 듯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비용이 수익을 초과하는 소위 손해보는 사업을 계속 영위할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좋은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좋은 컨텐츠를 계속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수익이 비용을 초과해야 함은 당연할 뿐 아니라, 그 이후에 잉여 이익이라는 것이 발생해야 또다른 연구개발비를 투자할 수 있고 새로운 시도의 새로운 컨텐츠를 선보일 수 있습니다.
눌러라 좌뇌천재는 2500원, 하얀섬은 3000원, 점파는 4000원에 출시되었습니다.
2007년도 2월 눌러라 좌뇌천재가 출시된 시점부터 4년이 지났고, 좌뇌천재에 비해 점파나, BTB는 거의 5배 이상의 개발기간과 비용이 발생되었지만, 가격은 아직 고작 2배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섯불리 가격을 인상했다가는 유저들이 떠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게임 자체가 팔리지 않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업계의 사람들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방법은 초기 가격을 부담스럽지 않게 하면서 늘어난 개발비를 충당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컴투스에서 처음으로 “부분유료화”라는 방법을 통해 내 놓았고, 이후 많은 업체들이 이 방법을 따르게 되면서 이제, “부분유료화”가 없는 게임은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분명한 문제가 있습니다. 가격은 고객이 구매하기 전 확실하게 인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공정한 정보이지만, 부분유료화를 통한 추가 과금은 이 게임을 진행하기 전 까지 대체 얼마가 들게 될지 유저들이 알지 못합니다. 이 게임을 끝까지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추가로 얼마의 비용을 더 내야할 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유저들은 게임을 구입하고 난 다음 또 다른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드렸을 때, 난 이미 비용을 모두 지불했는데 왜 또 돈을 내야 하나… 하는 개발사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컨텐츠의 가격이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설정되고 그 가격으로 정당하게 판매되며, 추가 과금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높은 초기 가격 때문에 처음 유저들이 당황할 수는 있지만, 이 가격 만큼은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는 컨텐츠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면 이후 시장에서는 유저들이 드는 그 속았다.. 는 느낌은 사라질 것입니다.
온라인이든 모바일이든 한동안 게임 콘텐츠들이 국내에서 전반적으로 출혈경쟁을 하게 되면서 가격 저항이 심해져 소위 “받아야 할 가격”과 “매겨져 있는 가격”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그 두 간극을 메우는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컨텐츠업계가 살아남기 위해서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일 것입니다.
iPhone 시장에서 저희가 기대하는 것은 업체에 모든 자율이 맡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게임 컨텐츠의 가격을 매기는 것도, 부분유료화를 하는 것도, 게임을 공짜로 배포하는 것도 모든 것이 자율입니다. 이는 마치 온라인게임시장과도 동일합니다.
이런 시장에서라면 각 회사들이 자사에 맞는 전략을 택하고 보다 정당한 방법으로 과금하면서 좋은 컨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내실을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NgMoco에서 개발한 아이폰/패드 용 게임인 ‘위룰’이라는 타이틀은 게임 전체를 즐기는 과정이 공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조’를 부분유료화 해 판매하는 것은 유저들의 선택이며, 유저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비용을 지불하며 게임을 즐길 수 있고, 또 품질 높게 구현된 게임을 공짜로 ‘미리 해보고’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비용 만큼을 선택해 지불하는 아주 좋은 형태의 ‘부분유료화’인 것입니다. 이것은 게임 콘텐츠의 특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어떤 한 형식을 모든 게임에 적용해 강제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좋은 예 입니다.
하얀섬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하얀섬의 경우 컨텐츠 가격 3000원에 시나리오B 오픈에 1500원을 과금하였습니다. 1500원을 알지 못하고 게임을 받으셨던 많은 유저들이 상심을 하셨지만, 전체 금액을 합쳐보면 불과 4500원으로 점파, BTB와 500원의 가격차이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유저들에게 공정하게 4500원의 가격으로 공지하고 판매하였다면 하얀섬을 해보신 많은 분들이 이 게임이 커피 한잔 가격도 안되는 4500원의 가치는 충분히 할만하다고 공감하시면서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4500원도 충분한 컨텐츠 가격은 아니지만 구매 저항은 적었을 것입니다. (이 금액에 다시 수수료를 제해야 하고, 남은 금액을 퍼블리셔와 개발사가 나누는 방식이기 때문에 정작 개발사로 들어오는 금액은 또 다릅니다.)
오픈마켓이 대세로 떠오르고 저희 같은 작은 개발사들에게도 많은 기회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저희가 유저들의 마음을 몰라서, 혹은 일부러 이렇게 좋지만은 않은 방법을 택하면서 무리하게 부분유료화 과금을 하는 것이라는 오해의 글을 볼 때마다 참 마음 한쪽이 아픕니다. 저희를 오랫동안 지켜보시는 팬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저희는 유저의 편에서 유저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최대한 여러분께 많은 것을 드리고 싶은 개발사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by Kay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