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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시 5년…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업계에 있으면서 알게된 지인들을 만나 머릿속의 구상들을 꺼내놓고 이 해피엔딩의 드라마에서 어떤 논리적인 오류가 있는지, 어떤 이야기가 빈약한지를 묻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두서없는 자리들을 마주하면서 점점 이상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는 경영학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이었기 때문에 창업을 준비할 때 어떤 구체적인 것들을 아름답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했다. 하지만, 1998년도에 벤처기업-중기청에서 인정하는-을 만들어 보겠다고 무턱대고 정관과 사업계획서라는 걸 써봤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고, 이렇게 무대포로 길고 긴 드라마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 보다 한 눈에 들어날 수 있는 문서 같은 것이 있으면 훨씬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을 전달하기가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기에 작성한 사업계획서는 사업계획이라기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프로젝트제안서에 가까웠다. 한 140페이지 정도되는 게임과 비슷한 온라인 컨텐츠 서비스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이것이 비주얼샤워의 첫단추였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문서를 보여주고, 문서를 다듬기를 거의 1년을 반복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내 마음 속의 신념을 무디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학교에서 경영학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생겼고, BS와 IS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때 내게 재무회계를 가르쳐 주신분은 국내에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하는데 위원으로 참여하신 주인기 교수님이셨다. 한번은 교수님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기게 되었는데, 역시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랄까? 저돌적(?)으로 임시명함을 전해드리고 회사를 만드는 중이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조언의 시간을 구했다.

-창업후에도 한동안 나는 ‘대표이사’라고 찍힌 명함을 차마 만들 수가 없었다. 경영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사장’이라는 자리에 내가 아직 앉을 만한 능력이 안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고, 사실 지금도 우리 회사의 사장실은 늘 비어있으며 나는 직원과 같이 같은 공간 같은 책상에 앉는다.-

주인기 교수님의 바쁘신 아침 시간을 도적질 해, 10분간의 섬광이 번뜩이는 면담을 받았다. 교수님의 말씀 : “이건 뭐냐… 내가 널 이렇게 가르쳤었냐? 이런건 사업계획서가 아니다.”. 교수님의 주름진 미간 사이로 회계 기준에 대한 질책이 쏟아졌다.

다음에 다시 차마 교수님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교수님이 시간을 내주실 만큼 내 능력이 도저히 채워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거의 4년동안 이를 꽉 깨물고 경영학과 교과목을 섭렵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친구보다도 더 많은 경영학과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 들을 수록 배우면 배울 수록, 사업 준비가 진행되면 될 수록 “추정재무제표”로 시작하는 그 사업계획서에 굉장한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왜 내가 벤치마킹한 그 수 많은 회사들의 추정재무제표, 사업계획서들이 전부 의미가 없는 것인지…… 내 손에 들려있는 그들의 과거 사업계획서 그대로 현재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들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이때가 터닝포인트였다. 더 이상 나는 “추정”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재무제표를 만드는데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 거꾸로, 진짜 우리 회사가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었으면 좋을지를 묘사한 1999년도 아무 것도 모르는 스무살이 쓰던 바로 그 감성적인 사업계획서를 완성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그렇게 2005년, 앞으로 5년의 선을 긋고 그 동안, 내가 낳은 “비주얼샤워”라는 놈이 어떤 것들을 해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채워나갔다.

그 과정에 이런 경우도 있었다. 작은아버지가 SCEK(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라는 업체에 근무하신 적이 있었다. 창업을 준비하던 차에 PSP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는데 혹여 작은아버지의 도움을 받을수 있을까 싶어 PSP 개발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를 여쭤본적이 있다. 작은아버지는 “니네 회사가 매출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고, 게임을 많이 개발해서 소니라는 회사가 너희한테 개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줄 수 있게 만들어야 된다. 그리고 난 그 밖에 다른 도움은 줄수 없다.” 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5년안에 해야 할 일 중 소니의 서드파티가 되겠다는 목표가 추가되었다.

그 밖에도 모든 장르의 게임을 하나 이상 만들어 출시하는 것,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일본에 있는 개발 스튜디오들이 같이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것, 닌텐도같은 역사 깊은 비디오 게임 업체의 서드파티가 되는 것, 모바일 미들웨어 기술을 구축하는 것, 비주얼샤워에 개발스튜디오 체제를 정립하는 것 등 5년안에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내용들을 꽉꽉 눌러 채웠다.

2009년 12월 31일 종무식

나는 사원들에게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5년동안 이루어야겠다고 그려놨던 그 목표를 모두 이뤘다고. 하나도 빠짐 없이.
만약에 5년동안 돈을 100억을 벌겠다, 50억을 벌겠다 같은 지극히 “경영학적인” 사업계획을 마음을 다해 썼었더라면 5년후인 2009년도 종무식에서 내가 직원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어느 늦은 밤, 스튜디오에서 창업하기전 썼던 사업계획서를 다시 읽어봤다. 정말 처음 그대로였다. 아름다운 목표들은 바뀐게 없었고 5년동안 정확히 하겠다는 것들을 그대로 해냈다. 이제는 세계적인 회사들이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해오고, 우리가 만드는 게임들에 유저들이 흥분한다. 어디에 가서 비주얼샤워의 회사소개서를 보여주더라도 반드시 다음에 조용히 다시 한번 만나자는 “애프터” 제안을 받는다.

나는 2010년 1월 1일부터 지금-한 분기가 지나가고 있는 -까지 앞으로 5년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부에서 프로젝트 코드 “큰그림(BigPicture)”으로 불리고 있는 바로 그 마음으로 쓰는 “레알” 사업계획서다.

조직은 커지고 있고, 모바일 기술의 발전은 창업할 때 예측한대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의 바람을 불어준다. 사람들 간의 끈끈한 신뢰가 뜯을수 없을 만큼 엉기기 시작했고, 나는 그들을 믿고, 그들은 나를 믿는다. 이제 우리가 가진 플라이 휠은 그 지름이 조금 대단하다.

금요일 밤 12시가 넘도록 전략 회의가 끝날 줄 모른다. 사람들은 앞으로 우리에게 찾아올 무엇을 그려도, 어떻게 계산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할 미래에 대해서 현실감각을 잃는다. 아마 우리는 그것들을 다 이룰 것 같다는 신념의 공기를 마신다.

아무 것도 없던 시절, 자본금 0원으로 시작한 “비주얼샤워”가 내게 보채고 있는 건 앞으로 5년간의 또 다른 그림이다. 해야할 일은 돈을 얼마 더 버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의 바탕 스케치를 하고, 그 멋지고 큰 그림을 내 사람들과 같이 칠하는 것이다. 100년이 가고 200년이 가는, 나보다, 아니 내 자식보다도 더 오래 사는 것이 “비주얼샤워”의 운명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 내가 반복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진짜 “비주얼샤워”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by Kay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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